여러분은 ‘우유팩’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저는 어릴 때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았던 우유를 다 마신 후 차곡차곡 상자에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모인 우유팩들이 그다음에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신적 있나요?
오늘의 브랜드 펄피는 우유팩을 활용해 다양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요. 과일 모양의 방향제, 씨앗 재배 키트, 데스크 트레이까지. 겉모습만 보고서는 우유팩을 떠올리기 힘든데요. 펄피는 어떻게 이런 독특한 제품을 만들게 됐을까요?
하경민 원래부터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원데이 클래스에 가거나 DIY 키트로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곤 했었죠. 그러다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원래 좋아하던 걸 더 많이 해볼 수 있는 환경이 됐어요. 집에서 구할 수 있는 종이나 우유팩 같은 재료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펀딩을 시작했고, 그런 과정이 이어져 사업이 되었네요.
저는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했다기보다, 그냥 취미 활동의 개념으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제가 만든 걸 주변에 선물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고, 주변에서 응원해 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걸로 내 브랜드를 만들어 볼까?’라고 점차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하경민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 (웃음)
하경민 저보다 더 저를 믿어준 거죠. 저도 이 사람들이 믿어준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같은 시기에 작은 사업을 시작한 지인분들이 계셔서 조언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경민 저는 사업을 하든, 회사에서 직원으로서 일을 하든,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고, 그 쓸모가 선한 방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회사에서 인정받으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뭔가 사회에 더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거든요. 재생 펄프지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일이 취미를 넘어서게 된 것도 그런 마음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하경민 처음에는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접하게 된 건데, 알고 보니 우유팩이 다른 폐지에 비해 재활용률이 매우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일반 폐지에 비해 월등한 내구성과 퀄리티를 가졌지만, 마땅한 재활용 시스템이 없어 쉽게 버려지고 있었어요. 이걸 더 잘 활용해 볼 수 없을까 생각했죠. 종종 활용 사례들을 보긴 했지만, 그런 방법들이 정리되지 않고 흩어져 있는 느낌이었어요. 해외 사례나 특허 논문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재생 펄프 아이템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경민 우선 지역 카페나 학교, 단체에서 다 쓴 우유팩을 수거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이 재료 가공 단계인데요. 다른 종이나 펄프와는 다르게 우유팩은 비닐 코팅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중요하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죠. 가공이 끝나면 압축해서 원하는 형태로 모양을 만들고, 향과 색을 입혀서 제품을 만들어요.
하경민 저희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귀엽다는 거예요. 친환경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고 소재도 낯설지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업사이클링 제품이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해서요.
하경민 고차원적인 의미를 담거나 미감이 정말 뛰어난 아트 오브제들도 있고, 특히 이렇게 환경적인 의미를 담는 제품들은 진중한 브랜드가 많아요. 그런데 펄피는 조금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귀여움으로 무장해서 가볍게 다가가는 브랜드로요. 딱 보고 귀여워서 구매했는데, 써보니까 괜찮고, 근데 환경적인 의미도 있다니 좋다! 이렇게 흘러가야 부담이 없고 지속적인 소비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경민 막연히 10대, 20대분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다양한 분들이 구매하시지만, 그중에서도 30대, 그리고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세요. 씨앗 재배 키트 같은 경우, 확실히 같이 가드닝 체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상품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교육용이라는 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니즈였어요.
지금은 집에서 직접 만드는 DIY 키트를 신제품으로 준비하고 있는데요. 원래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기획했다가, 고객 반응을 보면서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키트로 만드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하경민 고객을 직접 만나보면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바로 다르게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프루티펄피는 방향제니까 향을 직접 맡아볼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더 잘 팔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온라인에서 반응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특히 ‘선물하기’ 제품으로도 잘 팔려서, 그런 쪽으로 제품을 더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같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보는 체험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품은 많이 들지만, 고객과의 접점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목적이 큰 것 같아요.
하경민 그게… 저는 항상 계획을 세우는데요.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하경민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처럼 내 브랜드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을 그려본다거나. 너무 (MBTI 유형) P가 생각하는 계획인가요? (웃음)
예를 들면 회의실에 직원들과 같이 앉아서 월간 계획을 세우는 장면 같은 걸 상상하는 거예요. 이런 장면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공간을 임대해야 하는 목표가 생기고, 직원들도 뽑고 싶고,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할 일로 이어지는 거죠. 제가 원하는 하나의 장면을 그려보고, 그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는 것 같아요.
하경민 사실 저는 굉장히 진지한 사람입니다. (웃음) 저 자체는 굉장히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데, 그런 모습을 덜어내고 덜어내서 귀여움만 남겨 놓은 게 펄피인 것 같아요. 제 진지한 고민의 결과가 이렇게 귀엽게 나오는 거죠.
하경민 제가 처음부터 환경 운동에 대한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취미 생활로 브랜드를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운영하면서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이 제품들도 누군가 사용하다 버리게 될 거잖아요. 그걸 버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환경적 부담이 덜하게 할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자원을 수거해서 가공하고 다시 판매하는 이 과정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하경민 펄피를 통해서 우유팩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분이 많아요. 재활용 자원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으니까, 더 나아가서 의미 있는 메시지나 경험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소비자는 제품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래도 생산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경민 우선 아직은 제품 종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더 많은 아이템을 선보이고 싶은데요. 말씀드렸던 DIY 키트 신제품을 잘 준비해서 론칭하고 싶어요. 원데이 클래스나 유튜브 영상처럼 제품과 관련된 콘텐츠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직원을 채용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대기 중인 페이퍼마쉐 클래스부터 빨리 오픈해야 해요. 신청을 받고 있는데, 일이 많아서 계속 오픈이 미뤄지고 있거든요... 오늘 인터뷰 마치고 저는 또 바로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번 인터뷰를 마치면서 바로 떠오른 말이었어요. 귀여운 제품에 그렇지 않은 제작 과정, 가볍게 만든 것 같지만 담겨있는 깊은 고민, 그리고 실은 그 누구보다 진지한 대표님까지. 펄피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브랜드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죠.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더 오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자기다움을 지켜가며 성장할 수 있도록 아임웹이 더 많이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랜드의 성장을 응원하는 만큼, 아임웹도 더 성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