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더북소사이어티
2024. 12. 25
2024. 12. 25
<더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
2024년 10월.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자연스레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도서 판매량이 높아지며, 텍스트힙*이라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어요. 서점을 문구점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몇 달 전과는 달리, 여느 때보다도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선반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년이 온다’부터 한강의 다른 작품들까지. 그리고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텍스트힙: 텍스트(Text)와 힙(Hip)의 합성어로, 글을 읽는 행위가 멋지다는 뜻
그런데 이 서점은 좀 다릅니다. 눈에 익거나 유명한 책은 보이지도 않고요. 마구 쌓여있는 종이 더미가 사실은 팔고 있는 책이래요.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더북소사이어티는 디자인과 예술에 특화된 서점으로, 국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외국 도서와 자주 출판* 서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다는 ‘Best Seller’라는 공식을 도외시하고 반대의 길을 걷는 더북소사이어티의 임경용 대표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자주 출판: 개인이 자발적으로 출판의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 독립 출판으로도 불림.
임경용 대표는 원래 영화를 전공했습니다. 영화 이론과 제작을 공부하며 일을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영화 산업이 커지면서 점점 거대한 구조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영화 쪽 일을 하다 책을 접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계기였는데요. 부산 영화제에서 자료 담당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VHS로 오는 자료를 기자 등 관계자들이 다 볼 수 없으니까 그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룸을 만들었대요. 그 곳을 관리하면서 출판을 해야하는 업무를 하다보니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VHS: Video Home System의 약자로 ‘가정용 비디오 규격’을 말함. 카세트를 이용하여 동영상을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표준 규격
여러분은 책을 왜 읽으시나요? 필요한 정보가 있어서, 재미를 찾기 위해.. 도서의 종류가 다양한만큼, 그 목적도 저마다 다를 것 같은데요. 그런데 글이 없는, 혹은 아예 정보가 없는 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임경용 대표가 ‘정보없는 책’을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이 시점이었어요.
외국에서 보내는 자료들 가운데에 당시에는 국내에서 생소했던 진(zine)* 같은 것들이 있었던 거죠. 처음 접해서 호기심이 생기는 와중에 우연히 미술 행사(비엔날레)에서 일을 하게 되었대요. 진을 처음 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미술작가들은 진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형태의 아티스트 북*을 유통하고 있었어요. 당시에만 해도 책은 ‘어떤 정보를 담은 콘텐츠 용기’같은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보라는 게 없는 책을 처음 접하게 된거죠. 마땅한 정보가 없는 책들이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어 시장을 만드는 것이 흥미로웠고, ‘우리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2007년 더북소사이어티를 시작했습니다.
*진(zine): 개인 혹은 단체가 독자적으로 제작한 출판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
*아티스트북(artist’s book): 정보를 담는 그릇으로서가 아니라 표현 그 자체로 대화를 시도하려는 새로운 형식의 책
임경용 대표는 자주 출판에 대해 “책이 너무 보편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어떻게 책을 이해하고 경험하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는데, 그 방식이 다양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어요. 집에서 인쇄해서 스테이플러로 찍어내는 얇은 책이라든지, 마이너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책들도 있죠. 이런 책들이 2007년 이전에 국내에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과거 선구자 역할을 했던 디자이너들이 만든 좋은 책이나 잡지가 유통의 어려움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대요. 그래서 자주 출판은 제작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유통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요. 결국 ‘미디어 버스’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적은 비용 안에서 출판, 제작, 판매, 유통 그리고 작은 전시 업무까지 하게 되었어요. 미디어 버스에서 운영하는 서점이 바로 더북소사이어티인거죠.
2010년부터는 온라인 유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출판 페어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는데요. 2024년을 기준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방문한 유료 관람객만 15만 명이 넘었고, 아트북 페어인 언리미티드 에디션(unlimited edition)도 성황리에 종료되었죠.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적은 경제 규모의 인구에서도 고가의 책이 거래되는 등 시장이 많이 형성되어있죠. 출판을 통해 문화 교류와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죠. 더북소사이어티는 2020년부터 ‘방법으로서의 출판:아시아에서 함께하기’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20여 개의 아시아 도시에서 활동하는 출판 관련 이니셔티브들의 인터뷰와 에세이, 아트워크를 수록한 단행본을 만들기도 했어요. 출판을 단순한 콘텐츠 제공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북소사이어티의 하루는 정말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출판, 제작, 판매, 유통, 전시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기 때문에 정해진 루틴보다는 앞에 놓인 일들에 집중합니다. 옥인동에 위치한 더북소사이어티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는데요. 필더브랜드:더북소사이어티 편에는 2024년 11월 26일에 진행한 ‘스스로를 가르친 경위:아티스트 북을 중심으로’와 2024년 11월 27일에 진행한 ‘Bulletin B 창간호 발표’를 담았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새로 입고된 책들을 소개하고, 뒤이어 있을 일들을 준비하곤 하죠.
조용하고 한적해 보이는 더북소사이어티 안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입고될 책을 설명하기 위해 글을 쓰고, 서가를 정리하고, 가끔은 ‘서점’으로 검색해서 “여성 중앙”을 찾는 엉뚱한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회의를 하고,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관계자들이 방문하기도 하죠. 통상적으로 ‘책을 판매한다’고 생각하는 서점이 아니라, 다양한 말과 생각이 어우러지는 이곳은 단순히 장소가 아니라 어떤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출판이 정보를 전달을 넘어,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임경용 대표의 철학이 잘 보여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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