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진심을 처방하다 - 슬로우파마씨, 이구름 & 정우성
2024. 01. 17
2024.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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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파마씨
식물의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는 플랜트 디자인브랜드.
복잡하고 빠른 세상에 치여 사는 사람들에게 식물을 통해 더 느리고 침착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식물 스타일링, 디렉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까르띠에, 르메르, 코오롱, 피스마이너스원, 논픽션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습니다.
외갓집 식구들이 정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어요. 외할아버지가 과수원을 하시고, 저희 어머니께서 꽃집을 하신 지 30년이 되셨고요. 이모, 외삼촌까지 친척분들이 다 원예 관련 일을 하세요. 만나면 다 그 이야기뿐이야. 저랑 언니는 사실 전자과를 나왔는데, 못하겠다 싶어서 결국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우리 딸들한테도 느껴졌던 것 같아요.
작은 광고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회사 앞 1분 거리에 이사 오고, 매일 야근도 즐겁게 할 정도였어요. ‘이 회사를 어떻게든 키워보겠다’ 이런 마음으로 밤낮없이 일을 했는데, 진짜로 회사가 갑자기 확 커졌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너무 제 힘을 다 쏟아버린 것 같은 거예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어요. 내 안에서 뭔가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쳐내는 것밖에 없는 기분. ‘내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지?’ 그렇게 방황하다가 식물로 다시 돌아오게 됐죠.
초반에는 사업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언니네 집에 같이 살았는데, 언니가 꽃집을 했거든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비커에 선인장을 넣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올려본 거예요. 반응이 괜찮았어요. 사람들이 ‘이거 살 수 있어요?’ 물어보면 그때는 사무실이 없으니까 오피스텔로 오라고 해서 팔고 그랬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좋아요’가 스크롤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고, 팔로우가 몇백 명이었는데 갑자기 1만 가까이 된 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어서 제 이름을 검색해 봤을 정도로요. 인스타그램이 국내 론칭한 지 얼마 안 돼서 첫 가입자들에게 소개되는 계정으로 노출이 되었던 건데, 이때 많은 분들이 슬로우파마씨를 알게 됐죠. 처음으로 이끼 테라리움 키트 100개를 만들어서 100개 다 팔았어요.
어느 날 성수동 카페 ‘자그마치’ 대표님에게 팝업 제안이 왔어요. 슬로우파마씨 제품을 자그마치에서 팔아보라고. 너무 떨렸던 기억이 나요. 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전시를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대표님, 저 팝업할 때 판매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 테이블에서 뭔가 전시를 같이해보면 안 될까요?’ 제안했더니, 진짜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팝업과 전시를 함께 했는데, 그때 보신 분들이 ‘아, 이 브랜드가 장사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생각하신 거죠. ‘우리 이번에 대림창고에서 연주회 행사가 있는데 벽을 꾸며줄 수 있어?’ 이런 제안이 막 들어왔어요. 이전에 그런 일 해본 적도 없었고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냥 무조건 할 수 있다고 대답했어요.
맞아요. 저희는 식물을 기반으로 공간을 꾸미는 일을 한다고 소개해요. 조경회사라고 불리는 건 정확하지 않거든요. 그냥 식물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는 스튜디오라고 불렸으면 좋겠어요.
언니가 강남에 꽃집을 하나 냈어요. 거기에 지하실이 있었는데, 그 지하실이 원래 무당집이었대요. 사람들이 터가 안 좋다고, 무섭다고 안 쓰고 있더라고요. 근데 나는 그만한 게 없는 거야. 강남에 내가 숍을 낼 수 있는데? 그럼 내가 치워서 써보겠다고 했어요. 물건도 직접 빼고, 에폭시도 혼자 다 깔고… 강남이어도 되게 허름한 동네였거든요. 근데 그 허름한 곳을 찾아서 업계의 유명한 분들, 연예인분들까지 많이 와주셨어요. 좀 말이 안 된다 싶은 상황을 많이 겪었죠. 그분들이 또 새로운 일을 주시기도 하고. 그렇게 1년도 안 돼서 9평에서 50평짜리 사무실로 이동했어요.
저희 같이 일하는 기사님들이 계시거든요. 배송 기사님들,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그분들이 저희 성공 비결이에요. 저한테 엄청 큰 힘을 주는 분들이에요. 예전에 할 일 없을 때 비닐하우스 농장에 맨날 왔다 갔다 했거든요. 얼굴도 트고 일도 배우고 싶어서요. 저는 어떤 사람을 하루에 다섯 번 보면 그냥 다섯 번 다 인사했어요. 인사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그러다 보면 그분들이 갑자기 고급 정보를 줘요. ‘그거는 저 사람들이 잘해’, ‘비닐하우스 필요해? 그러면 저기 좋은 데 있는데 써볼래?’ 그럼 갑자기 비닐하우스를 말도 안 되는 싼 금액에 쓰게 되는 거예요. 저는 서울에서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고, 친구도 별로 없고, 부모님을 통한 지인도 없었어요. 근데 이렇게 현장에서 만난 분들이 저를 좋게 보고 다 알려주시고 도와주신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못 했죠.
저는 100만 원짜리 일을 받으면 200만 원어치를 해요. 대접받기 전에 먼저 대접해라, 이걸 식물한테서 배운 것 같아요. 50평 크기의 비닐하우스가 있으면 그 안에도 ‘로열 존’이 있어요. 바람도 잘 들어오고 햇볕도 잘 받는 좋은 자리. 보통 값어치가 높은 아이들을 두죠. 한 번은 제가 안 좋은 자리에 놓인 식물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로얄존에 둬 봤어요. 근데 그 아이가 엄청 자라난 거예요. 상품 가치가 생긴 거죠. 이렇게까지 클 애라고 생각 못했는데, 나한테 미친 듯이 보답하는 것 같았어요. 진짜 식물은 마음 준 만큼이에요. 마음 안 주면 금세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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