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갑자기 눈이 아파서 안과에 갔어요. 눈에 염증이 생겼으니 당분간 렌즈는 절대 끼지 말라더라고요. 저는 안경이 잘 안 어울리고 불편해서 그동안 렌즈를 껴왔거든요. 이참에 오래 쓸 수 있는 편한 안경을 찾다가 피플라를 알게 됐습니다. 가볍고 편한 이 안경, 알고 보니 국내 최초로 페트병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고 해요. 아임웹팀이 이런 멋진 브랜드를 놓칠 수 없죠! 피플라의 조은영 대표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조은영 안녕하세요. 친환경 아이웨어 브랜드 피플라(Peapla)를 만들고 있는 조은영입니다.
저는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코로나 팬데믹 전까지 계속 미국에서 지냈어요. 미국에서는 SPA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는데요. 2017년도쯤 업계에서 환경 이슈가 큰 화두로 떠오르면서, 패션 산업이 끼치는 환경 오염의 심각성에 대해서 인지하게 됐습니다. 자연스레 제 일에 대해서도 큰 회의를 느끼게 됐어요.
저는 청각 장애인이기도 한데요. 미국의 대기업을 다니면서 장애인이자 동양인으로서 제가 느끼는 차별, 포지션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이런 고민이 모여 본격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은영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안경을 써온 사람이라 친숙한 아이템이었어요. 특히 저는 안경 브랜드들을 좋아해서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와비 파커는 유통 구조를 혁신하여 안경 가격을 대폭 낮춘 혁신적인 기업인데요. ‘아이웨어 업계의 애플’이라고 불릴 정도로 훌륭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고, 소비자가 안경 하나를 구매하면 하나를 기부하는 소셜 프로젝트도 진행해요.
이런 훌륭한 브랜드들을 보면서 ‘동양인에게 잘 맞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안경 브랜드는 왜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이 문제를 제가 직접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종, 성별,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어울리고, 환경 오염을 최소화한 안경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저의 직업적 배경과 제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환경적 질문들을 잘 엮다보니 지금의 피플라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조은영 안경 분야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원재료 소싱부터 제조 공장 찾는 것까지 모두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기획부터 첫 시제품 제작까지만 거의 1년 정도의 시간을 쏟았습니다. 재활용 플라스틱(r-PET) 소재가 생소한 데다가 사출 및 가공 작업이 까다로운 편이라 공장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겨우 찾은 공장에서 최소 주문 수량(MOQ)을 맞추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고요. 일일이 구글링하거나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 같은 곳에 무작정 연락해서 업체 소개를 받는 식이었어요.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그만큼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다행히 첫 제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조은영 사실 첫 제품은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말 그대로 시제품이었죠. 그런데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펀딩에 참여해 주셨고 ‘가볍고 편안하다, 디자인이 예쁘다’라는 후기를 보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특히 소셜 섹터, 임팩트 투자자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번에 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연히 펀딩에 참여하신 분들을 만났는데요. 이분들은 아쉬운 점도 많이 이야기해 주셨어요. 사실 저는 칭찬보다 보완점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을 때 더 기쁜 것 같아요. 칭찬에 안주하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가 없잖아요.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 시간을 내서 해주시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더 감사하고요.
조은영 그전에 저희 제품에 대한 아임웹팀의 생각이 궁금한데, 먼저 피드백을 주실 수 있을까요?
조은영 네, 그것과 비슷한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나라 여성분들은 보통 크고 헐렁한 안경을 선호해요. 고객을 만나서 그 이유가 뭔지 더 파고드니까 그게 얼굴이 더 작아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더라고요. 사실 저는 초기에 미국에 사는 동양인 고객을 생각하면서 사업을 구상했었어요. 그래서 제품 개발 당시 우리나라 여성분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더 파고들지 못했던 거예요. 여러모로 많이 무지했죠. (웃음) 지금 개발하는 신제품에는 안구가 큰 안경 라인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걸 만들어야지, 안 그러면 결국 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늘처럼 만나는 모든 분에게 이렇게 피드백을 요청하고 있어요.
조은영 주로 플리마켓, 팝업스토어에 참여하고 있고 오프라인 매장 입점도 알아보고 있어요. 이것도 해보면서 알게 된 건데, 오프라인에서는 그 매장에서 원래 어떤 제품을 파는지, 타깃이 누구인지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에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판매를 했는데, 5만원 이하 문구/소품류와 함께 놓였을 때 저희 제품을 구매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 반면 ‘알맹상점’ 팝업의 경우 구매 문의가 훨씬 많더라고요. 가치 소비에 관심이 많은 30대 여성분들이 오는 공간이고 다른 제품들과도 결이 더 잘 맞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조은영 아무래도 제가 디자이너였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원통형 패키지는 100% 재생지로 만들었고 안경 닦이, 케이스도 재활용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었는데, 컬러나 디자인을 입혀서 어느 정도 저희만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했어요. 제품 사진의 경우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잘 보여주기 위해 인종, 젠더 등을 고려해서 여러 명의 모델을 섭외했습니다.
하지만 멋진 브랜드 디자인을 내세우는 게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충성 고객을 만들려면 우리 이야기보다는 소비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디자인이나 브랜딩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잖아요. 첫 펀딩 상세페이지에는 저희 브랜드 스토리, 제 이야기를 많이 넣었는데, 이번에 신제품이 나오면 조금 다르게 만들어 볼 예정이에요. 첫 제품 이후 배운 점들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더 많이 담으려고 합니다. 어떤 메시지가 가장 고객이 듣고 싶은 이야기인지 계속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조은영 너무 많은데요. (웃음) 개인적으로는 해보지 않았던 영역에서 너무 다양한 일을 해야 해서 힘든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상사나 디렉터분들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고,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업무 스타일이 저한테 굉장히 익숙했었거든요. 대기업은 팀이 많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보니 덜 복잡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혼자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상당히 많고, 나서서 저를 드러내야 하고, 제가 설득해야 할 사람들도 너무 많아요.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스타트업에 뛰어든 거죠. 저처럼 처음 창업하신 분들은 다 비슷한 고민을 하시더라고요.
조은영 그래서 피플라의 새로운 팀원을 모셔 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프리랜서나 협력업체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요. 사실 제가 요즘 가장 고민하는 건 ‘어떻게 더 많이 팔까?’보다 ‘어떻게 우리 브랜드를 정의하고 키워나갈까?’예요. 친환경, 다양성, 포용성과 같이 장기적인 미션을 추구하는 브랜드이다 보니, 저와 함께 피플라의 방향성을 고민해 줄 수 있는 핏이 잘 맞는 동료가 간절히 필요해요. 혼자서 고민하기엔 너무 큰 주제고, 협력 업체 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조은영 피플라는 아이웨어를 만드는 자원 순환 기업이에요. 제품 원재료는 재활용 플라스틱이고, 국내 제조와 유통으로 탄소 배출을 절감하고, 제품 포장지도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로컬 업체를 이용함으로써 지역적 상생을 추구합니다. 앞으로는 다 쓴 안경과 선글라스를 재활용하는 서비스도 만들 거예요. 그렇게 되면 100% 자원 순환 기업으로서 소비자들에게 그 가치를 임팩트 있게 전달할 수 있겠죠.
더 장기적으로는 피플라를 사회적 행동을 함께하는 커뮤니티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어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이 저희 제품인 안경과도 잘 어울리잖아요. 브랜드 이름을 ‘피플라(Peopla)’로 지은 이유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피플라의 팬이 100명, 200명 점차 늘어나면, 우리가 함께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고 실행하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조은영 브랜드 마케터, 브랜드 디자이너(콘텐츠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있어요. 어떤 능력이 있고 경력이 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안경이라는 제품과 아이웨어 시장에 흥미가 있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피플라의 미션에 깊이 공감하는 분이라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피플라 대표님 역시 아임웹팀에게 많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저희 생각까지 진심으로 궁금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이거야말로 초기 브랜드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이자 원동력이 아닐까 싶었어요. 모든 것이 처음이라 서툴다면, 가장 중요한 건 계속 나아지는 모습 그 자체일 테니까요. 피드백에 진심인 피플라가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해 나갈지 기대해 봅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피플라 공식 웹사이트에서 만나보세요.